당진 순성 초등학교 교정을 걷다 보면 야외 석조물이 있는 곳에 웬 비석이 하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비석 앞에 있는 안내문을 통해 해당 비석이 아지옹주 태실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태실(胎室)이란 탯줄을 봉안한 장소라는 의미인데요.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왕자나 왕녀가 태어날 경우 전국의 길지에 태실을 조성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풍수지리의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진 3) 화유옹주 태실비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태실이 있는 곳의 지명은 태실이 있어 태봉산 혹은 태봉리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실이 당진에도 있었다는 것을 바로 순성 초등학교의 교정에서 만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아지옹주 태실비는 누구의 태실일까요? 우선 아지(阿只)는 아기를 의미하는데요. 영상 자료 같은 것을 보면 예전에 왕자나 왕녀를 보고 아기씨 혹은 애기씨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아기씨 옹주의 태실이라는 의미입니다.
사진 4) 화유옹주 태실비의 전면
사진 5) 화유옹주 태실비의 후면
사진 6) 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건륭오년(乾隆五年)
사진 7)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화유옹주와 황인점의 묘
아지옹주가 누구인지 알려면 태실비를 주목해봐야 하는데요. 다행히 태실비에는 출생일과 태실 조성일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구가 바로 건륭오년(乾隆五年)입니다. 건륭 5년을 환산해보면 1740년(영조 16년)으로, 이해에 태어난 왕녀라면 영조와 귀인 조씨 소생의 화유옹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조의 총애를 받았던 화유옹주는 황인점(창성위, 昌城尉)과 혼인을 했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습니다. 현재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는 화유옹주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진 8) 화유옹주의 태실이 있던 태봉산의 원경
사진 9) 산 정상에 남아 있는 태실의 석물
사진 10) 태함의 함신
사진 11) 태실비를 꽂은 비좌
화유옹주의 태실은 순성면 성북리에 있는 태봉산의 정상에 있었는데요. 태봉 관련 지명은 옛 지도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화유옹주의 태실은 일제강점기 당시 현 서삼릉 경내로 옮겨지면서, 지금은 산 정상에 태실 관련 석물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화유옹주의 태실은 고양 서삼릉 경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순성 초등학교에 있는 태실비는 태봉산 인근에 방치되던 것을 옮겨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12) 서삼릉으로 옮겨진 화유옹주의 태실, 전면에 영조왕녀태실이 새겨져 있다.
지명과 비석 속에 숨겨진 화유옹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한데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당진 화유옹주의 태실, 혹 순성면 일대를 지나신다면 순성 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태실비를 한번 관심 있게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당진 화유옹주 태실비
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 59, 순성 초등학교
비고: 주차장, 화장실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