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이둔불고 :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싸울 뿐이다.
소난지도
의병이야기
난(어려울 난) 지(알 지) 어려움을 알아주는 곳,
항해를 하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이 난지도는 수백 명의 죽음을 간직하고 있다.
의병(義兵) :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국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민중이 스스로 외적에 대항하여 싸우는 이들.
의병의 죽음이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이후 양반, 평민, 농민 계급을 막론하고
전국에서 의병들이 일어나기 시작
승패이둔불고 [이기고 지는 문제 또는 유리하거나 불리한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불굴의 정신으로 무장했다.
난지도에서는 주로 당진, 경기, 서산, 홍주 의병들이 맹렬히 활동했는데,
을사늑약 : 을사조약으로 1905년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한국 정부를 강압하여 체결한 조약
그 이유는 조세선 중간 정박지인 난지도에서 전쟁 자금을 마련하고
해로를 이용해 일제의 주재소를 야간 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황성신문(1906.6.21) / 대한매일신보(1906.8.16) 기사 내용
의병 100여명 면천군에 돌입, 군수 이교영을 포박하고 이속을 난타하고 결전 350냥과 양총 5정 탄환85발, 환도 2정을 탈취함
당진지역에서의 의병활동일지(1906~1910)에서
찾을 수 있는 의병 관련 활동만 50여건
그러나 의병이 사용한 화승총과 일군의 명치(38식 소총)의 대결은
은장도와 광선검의 싸움이었다.
- 화승총
임진왜란 때 들어와 우리나라에서 개량된 총으로 3,4인이 불을 붙여 조준하면 유효사거리는 100m/ 눈이나 비가 오면 사용 불가
- 명치(소총)
1905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당시 최신무기로 볼트-액션 격발장치 최대 3km, 유효사거리 365m 5연발식,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
이어지는 일본군의 토벌 강행
1906. 8. 24. 최구현 의병장, 일본경찰대의 소난지도 급습으로 체포되어 면천성 갇힘(1907.2.5 옥고 순사)
1908. 3. 15. 홍원식 휘화 의병들, 일본 순사 위장 급습하여 41명 전사, 50여명 행방불명(자결), 9명 부상
1908. 7. 19. 정주원 의병장, 소난지 항전에 대한 복수전을 벌이나 일제에 체포되어 종신유배형을 당함
당대 황성신문에
의병을 폭도와 해적이라 묘사하며
토벌을 정당화하는 기사를 통해 소난지도 의병전투의 참혹상을 확인 할 수 있다.
-1908년 3월 24기사 <충청문화연구소 제공>-
1907~1910
조선팔도 곳곳에서
전투에 참가한 의병만
14만 1,602명
(조선폭도도벌지, 1913)
역사가들은(혹자는) 그들의 죽음을 거룩하다고, 그들의 투쟁을 성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의병의 정신은 훗날 1919년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어
또다시 전국 곳곳에 독립운동을 일으킨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박은식>>
국가가 부르기 전
국가를 위해 군사로 자처한
의로운 군사 의 병.
그들의 뜨거운 항쟁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습니다.
2017. 6. 1. 의병의 날 행사
충남 당진시 석문면 소난지도 의병총 거행
참고문헌.
- 매일신문 기사(2010. 1. 4.)
http://www.imaeil.com/sub_media/sub_media_view.php?media_id=24&yy=2010
- 김상기 교수 2003년 용역
- 국가보훈처 투자/ EBS 경술국치 100년 기억, 그리고 미래 1부 의병
- [경향신문 2005-04-25 18:15]
http://media.khan.co.kr/kh_media/khan_art_view.html?code=210100&artid=2005042517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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