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푸른 언덕이 멋진 신리성지와 순교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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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19-07-22 조회 : 297
"버그내순례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신리성당은 여름에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그려집니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당진 여행의 명소로 여러분께 소개하고픈 성당이자 성지가 있습니다.

​수많은 박해와 순교가 그려진 당진의 내포지역은 천주교 신자들의 피의 결실이 이뤄진 성스러운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솔뫼성지, 합덕성당 그리고 신리성지로 이어진 버그내순례길은 수많은 교인들의 순례길로 너무나 유명합니다. 버그내순례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신리성당은 여름에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그려집니다. 푸르는 언덕 위에 올려진 십자가의 모습은 최고의 당진 여행 장소로도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려주는 당진의 신리성지를 이번 여름날에 찾아가 보았습니다.

 

당진의 내포지역은 삽교호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배가 깊숙이 들어오는 포구가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오가는 선박들의 출입이 잦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충청 최고의 해안경비를 맡은 곳이 바로 면천읍성이었답니다.
이런 연유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서양문물과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외국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와 오늘 신리성지의 주인공인 다불뤼 주교 역시 강경을 통해 입국하여 곧바로 이곳에서 종교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진의 내포지역은 그 어떤 지역들보다 수많은 교우촌이 저절로 생성이 되었고 신앙의 깊은 뿌리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수많은 박해를 통해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 되었고 이를 성역화하는 코스로 버그내순례길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들의 증가와 함께 합덕 내포와 신리는 외국 선교인들이 쉽게 조선의 땅을 밟을 수 있는 비밀 입국하여 교우촌을 형성한 활동 무대로 크게 발전된 곳이었답니다. 이러한 바그내순례길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국내에서 잘 알려진 성지 순례길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것입니다. 1972년 개발을 위해 땅을 파는 순간 40여 구의 시신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32구의 시신에는 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 작은 마을이 바로 신리 지금의 신리성지였던 것입니다

 

신리성지는 1865년부터 이곳에 머물면서 제5대 조선교구장인 다블뤼 주교가 거처했던 곳이자 포교활동을 통해 마을 전체가 교인들로 이뤄진 곳이었습니다. 신리마을은 조선 최고의 교우촌으로 형성되었고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였으며 내포 천주교의 교점지역이기도 하였답니다.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 첫 발을 내디딘 다불뤼 주교는 21년 동안 병인박해로 순교하기까지 이곳에서 포교활동을 하신 분이었답니다. 훗날 성인에 오른 손자선 토마스의 생가인 초가집에 머물면서 한국 교회사를 위한 비망록 등을 썼는데 그가 남긴 기록들은 한국의 103위 성인을 탄생시키는데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신리성지의 넓고 푸른 잔디 위에는 작은 경당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역시 특별한 시선으로 다가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이곳 신리성지에서 주교인 다블뤼 교주와 함께 선교활동을 펼치며 순교의 피를 뿌렸던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성 손자손 토마스. 성 황석두 루카, 성 위앵 루카 신부, 성 오메트로 베드로 신부등의 모습과 말씀을 담아 놓아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그분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리성당 주변을 돌면서 마치 하늘에 떠있는 예수님의 부조상을 만나보면서 더욱 경건한 발걸음과 기도가 그려집니다.

 

이제 신리성지의 상징이자 당시 다불뤼 주교의 입국부터 순교에 이르기까지 선교활동 모습을 그린 그림들을 전시해 놓은 순교미술관으로 향합니다. 당진 신리성지는 당진의 다른 성지와 달리 푸른 언덕 위에 지어진 박물관의 십자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상징적인 모습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연인들과 종교인들이 찾아주는 명소로 잘 알려진 곳이 바로 신리성지인 것입니다.
 

발걸음은 신리성지의 곳곳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신리성지의 상징인 순교 미술관으로 옮겨 봅니다.
이곳을 들어서면 더욱 경건한 발걸음이 그려지면서 순교 미술관에 전시된 순교기록화들의 모습을 일일히 바라봅니다.
왜 신리교우촌이 왜 신리성지서의 역사적 사실 등을 접하는 것입니다. 당시 조선 포교를 위해 파견된 위앵 신부와 오메트로신부 그리고 황석두 등이 순교하면서 신리촌 마을은 몰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박해와 순교 속에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신리성지는 '한국의 카타콤베'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로마시대 그리스도 교인들의 피신처이자 교회이자 무덤이었던 그곳이 바로 신리성지와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그러한 순교의 성지가 그려진 신리성지의 역사를 그려보면서 떠나는 당진 여행을 권해봅니다.

※ 순교미술관 개방시간 09:00~17:00 (※ 휴관은 매주 월요일과 점심시간 12:00 ~13:00)

♦ 신리성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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