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충장사 부자(父子) 충신 남이흥, 남유 당진의 자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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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19-01-21 조회 : 441
"조선 중기의 무신 충장공 남이흥(南以興)과 그의 부친 남유(南瑜)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
 

당진에 있는 충장사를 소개합니다. 충장사는 알고 찾아간 곳은 아니었고, 당진을 여행하는 중에 자그마한 사찰인 줄 알고 들렀던 곳입니다.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의 야산 중턱에 자리한 충장사는 조선 중기의 무신 충장공 남이흥(南以興)과 그의 부친 남유(南瑜)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더라고요.
 

조금은 엄숙한 느낌,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남이흥 장군과 남유 장군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남이흥 장군은 정묘호란 안주성 전투의 영웅!
그는 명문의 문반 가문 출신으로 문관이 되려 하였으나, 1598년 그의 나이 23세 되던 해에 부친 남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자 글공부를 중단하고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는 굳은 결심 속에 무술을 연마하기 시작하여,1602년 27세 되던 해에 무과에 급제하고, 29세에는 장연현감으로 부임하여 간교한 아전들을 엄히 다스려 현민들이 태평성세를 누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였고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성에서 후금의 침입을 막다가 성이 함락되자 화약고가 있는 곳으로 적을 유인하여 적과 함께 자폭하였다고 합니다.

 

남이흥 장군의 아버지 남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도와 왜적과 싸우다 노량 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한 강직한 무신입니다.
 

정려각
사당 바로 아래에 있는 정려각은 1636년 인조 14년에 나라에서 두 부자(父子)에게 내린 것으로 현판에는 남씨양세충신정려(南氏兩世忠臣旌閭)이라 쓰여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재실이 있습니다.
 

여기서 남유 장군의 부인이자 남이흥 장군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궁금해집니다. 남이흥의 어머니 유씨(柳氏) 부인은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고 합니다.

“30년 사이에 부자가 모두 나라를 위해 죽었도다. 두 사람의 죽음은 영광된 것이라 무슨 한이 있으랴 만은 전몰병사와 그 미망인과 자식들이 잿더미 속에 울게 됨이 한스럽다.”

가히 충신의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이흥 장군의 어머니가 죽자 영의정 지천 최명길은 영광된 죽음을 기리는 만시(挽詩)를 바쳤다고 합니다.

은봉대군귀(恩封大郡貴)
수형팔순존(壽亨八旬尊)
존몰무유한(存沒無遺恨)
충훈병일문(忠勳倂一門)
은혜롭게 대군의 귀함에 봉해지고
수명은 팔순의 어른이셨네
살고 죽음에 남은 한이 없으며
충훈을 일문과 함께 하였네

 

충장사 경내에는 남이흥과 부인 하동정씨, 부친 남유 장군의 묘와 신도비가 있으며, 모충관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영정과 곤룡포·호패·고문서 등 남이흥의 유품 5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모충관은 평소에는 개방이 되지 않으며, 해마다 9월에 남이흥장군 문화제가 충장사 일대에서 개최되는데 이때 일반인의 관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살고 있는 듯한 느낌, '후손들이 살면서 충장사를 관리하고 있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한쪽에 놓인 아기자기한 항아리들이 참 정겹습니다.
 

애국 충절의 정신
방법은 다르지만,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지 않나요?

 

당진 충장사, 당진에 부자 충신이 있었다는 건 자랑이고 자부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년 가을 9월에 열리는 남이흥장군 문화제가 교육적으로도 귀감이 되고, 대외적으로도 많이 홍보되어 당진의 특별한 축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당진을 여행하실 때 충장사에 들러보시면 어떠실까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충장사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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