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주년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 체험행사!
지난 4월 3일 당진시 대호지면 창의사와 당진시 정미면 천의삼거리 일원에서는 100주년을 맞는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 체험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진시를 넘어 대한민국 3.1운동의 중요 독립운동 중 하나인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은 전 대호지 면사무소에서 시작되어 정미면 천의장터까지 이어진, 민관이 함께한 당진 최대의 독립운동입니다. 그날을 기념하며 만세거리 걷기 체험이 진행된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태극기가 나부끼는 이곳은 1919년  4월 4일 600여 명의 사람들이 대나무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펼친 천의장터(천의삼거리)입니다.
100년 전 이곳에서의 독립운동은 대호지면 면장이었던 이인정의 연설과 대호지면사무소 직원이었던 남주원의 독립선언문 낭독, 이대하의 애국가 제창, 송재만의 선창에 맞춘 대한독립만세운동이었습니다.

 

대호지면 창의사에서 시작한 행렬이 7km 구간을 지나 만세거리걷기체험의 종착역인 천의장터로 진입하는 모습입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7km의 거리를 지친 기색도 없이 행진하였습니다.  
4월 3일 행사에서는 감격과 기쁨으로 이 거리를 걸었지만 100년 전 그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919년 4월 4일의 만세운동은 사실 매우 급박하고 격렬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100년 전 대호지면 창의사에서 시작된 운동은 평화적 시위로 시작했지만, 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한 당진경찰서 순사의 권총발사로 시위대 4명이 부상을 입게되었고, 그후로 분노한 주민들이 투석전으로 대응하여 만세운동은 폭력시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천의장터 만세삼창
 

천의왜경 주재소 파괴 퍼포먼스

비폭력시위가 과격화되면서 만세운동은 결국 천의왜경 주재소 파괴에 이르렀습니다.
그날의 항거로 400명의 열사가 구속, 현상에서 1명이 학살, 3명이 옥중 고문치사, 39명이 형벌을 받고, 88명은 태형을 90대 이상 맞는 고초를 겪에 되었습니다.
결국 광복 후 나라를 되찾게 되었지만, 그 뒤에는 이런 슬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4월 3일 현장에서는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며 왜경 주재소를 파괴하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왜경 주재소 파괴 퍼포먼스 후에는 천의장터에 모인 시민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공연이었을까요?

 

시민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은 공연은 당진시 세한대학교 전통연희학교의 공연이었는데요, 흥겨운 공연에 장터에 모인 많은 어르신들이 어깨춤을 추기도 했답니다.
 

천의장터를 가득 채운 태평소 소리와 전통연희학과 학생들의 공연은 7km 의 걷기행사에 참여하신 시민들의 지친 심신을 시원케 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역동적인 몸짓에 시민들은 계속해서 환호성을 질렀고, 천의장터는 흥겨움으로 터질 것 같았습니다.
 

세한대학교 전통연희학과 학생들의 공연 후에는 신성대학교 학생들의 태권도 격파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마치 독립만세운동을 불렀던 시대에 살았더라면 왜경 순사들을 멋지게 걷어차주기라도 할 것처럼 송판을 호쾌하게 격파하였습니다.
 

4월 3일과 4일, 2일간의 행사는 만세길 걷기체험과 학생백일장 시상, 재현행진 등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 어떤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진 행사였는데요, 이번 행사를 통해 시민들은 순국선열들의 피끓었던 애국심을 되새겨 보는 한편 당진시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행사는 마무리 되었지만, 그날의 역사와 순국선열들의 애국심은 당진 시민들의 가슴 속에 오래오래 간직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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