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의 역사인물 탐방 병자호란의 충신 남이흥 장군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남이흥 장군 일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충신, 남이흥 장군 일가를 찾아서 ~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도시지리 남이흥 장군을 찾아가는 길 마을 입구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습니다.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남이흥 장군 사당인 충장사가 건립된 시기인 조선 선조 때 식재된 나무라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남이흥 장군의 발자취를 마을 길을 따라 낮은 야산 언덕에 자리 잡은 묘역까지 이르고 있었습니다.

1392년~ 1910년까지 518년 조선의 역사에서는 큰 전쟁이 두 번 있었습니다. 1592년 ~ 1598년까지 이어졌던 임진왜란과 1627년, 1636년 두 번에 걸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입니다. 대륙을 넘보려는 일본과 반도 끝까지 정복하고 싶었던 청나라의 침략으로 조선시대의 아픈 역사이네요. 충남 당진에는 그러한 두 번의 전쟁을 함께했던 충신이 있었으니 바로 남이흥 장군 일가였습니다.

 

 

'세 충신 부자' 사적을 알리는 사적비와 기념비를 지나 작약꽃이 활짝 핀 앞마당 너머로 큰 규모의 고택이 나타납니다. 아무도 없어 확인할 수 없었으나 아마도 장군의 후손들이 묘역과 일원을 관리하며 거주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어 주변으로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이 전신된 모충관, 남씨 양세 충신 정려 비각, 사당인 충장사와 묘소가 이어지네요.
 

 

 

당진의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던 향나무 너머의 일가 유품 전시관입니다.  남이흥 장군이 사용했던 물건들과 문중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들로 녹구 1벌과 인조의 하사품인 곤룡포 1벌, 영정 1점, 고문서, 복식 등 총 30여 점의 유물이 중요민속문화재 제21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묘역 일원은  6월 중순까지 묘역 일원의 정비 공사를 알리고 있었는데 그 여파인 걸까  전시관의 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서 확인한 유물의 모습입니다.  남이흥 장군의 영정을 비롯하여 생전에 사용하였던 대례복의 단련, 급제 교지, 지휘봉, 남녀, 궁대, 광대 등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아주 잘 보존된 듯하네요.
 

(사진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

전시관 뒤편으로는 남씨 양세 충신 정려라는 문구가 적힌 작은 건물이 있습니다. 남이흥 장군은 이괄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평안도 안주에서 3만의 후금 군사에 맞서 3천의 군사로 대적하였으나 안주성 수성이 불가능해지자 약고에 불을 지르고 전사하게 됩니다. 그의 아버지 남유 또한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왜군과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하였습니다.

그러한 두 무신의 충절의 보담으로 인조는 남유 남이흥 장군에서 왕명으로 정려와 가옥을 하사하였고 1790년 정조시대에 '양세 충신 정려'라는 정려문의 정려각을 건립 지금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남이흥 장군 묘역 일원은 그렇듯 보이는 모든 것들에 역사적 의미가 서려져 있었지요.

 

 

정려각 뒤편은 충장사입니다. 남이흥 장군의 위패와 영정, 부인인 정경부인 하동 정씨의 신주가 모셔진 사당입니다.  솟을 삼문의 정문이 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을 알리네요. 1667년에 처음 세워진 뒤 1859년 1929년 두 번의 중수를 거친 건물은 현재 정비 공사 중이었습니다. 
 

 

 

가장 위쪽으로 2단으로 조성된 묘역입니다. 사당과 더불어 충남 기념물 제52호입니다. 원래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있었는데 1971년 충장사가 있던 이곳으로 부인과 부친 남유까지 함께 이장하면서 가족 묘역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아래쪽으로는 부인의 묘역이 위쪽으로는 아버지 남유와 함께 나란히 모셔졌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켰던 남유 장군과 남이흥 장군입니다. 화강암 받침돌에 비신과 이수가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묘비와 함께 석등, 무신석 등 다양한 석물들도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많이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기품이 느껴집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묘역에서는  대호지면 도이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신위가 모셔진 사당 충장사, 후손이 살고 있음직한 고택과 대숲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고귀한 죽음을 맞이한 위인의 마지막 쉼터가 따뜻해 보여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충장정입니다. 조선의 2대 전쟁을 함께했던 두 무신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한국의 전통 국궁장으로 매년 가을에 개최되는 남이흥 장군 문화제 때는 국궁대회도 개최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전통 국궁장과 더불어 아래쪽 으로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약식 국궁장도 있었습니다.

5천 년 우리의 역사는 대륙 끝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무수한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조선시대 역시나 일본과 청나라의 큰 전쟁을 겪어야만 했는데요. 그때마다 나라를 지켰던 충신이 있었습니다. 남이흥 장군 묘역은  그러한 위인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6월 중순까지 예고하던 정비 사업이 마무리되면 더욱 쾌적한 환경 속에서 관람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남이흥 장군 묘역 :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충장로 1길 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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