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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 동악 이안눌에 대해 재조명하다" 제 5회 당진내포문화학술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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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19-12-26 조회 : 327

​"이안눌선생에 대한 지역적 관심과 특히 문학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 학술대회"

지난 12월 14일(토) 당진문학관에서 제5회 당진내포문화학술대회가 열려 다녀왔습니다. 당진문학관이 주최하고 (사)한국문학관협회가 주관한 이번 학술대회는 ‘당진의 대표문학가 시성 동악 이안눌의 시세계 조명’을 큰 주제로 하여 진행되었습니다. 당진에 사시는 분들도 정작 이안눌선생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 역시 이안눌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덕수 이씨 가문의 문맥을 이어받은 분으로, 조선시대 문인정도로만 알고 있는 터라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네요.

먼저 동악 이안눌선생에 대한 사전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관련 내용을 발췌해봤습니다.

이안눌[李安訥, 1571(선조4)~ 1637(인조 15)]

이안눌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민(子敏), 호는 동악(東岳). 좌의정 이행(李荇)의 증손이다. (중략)이안눌은 18세에 진사시에 수석합격한다. 그러나 동료들의 모함을 받자 관직에 나갈 생각을 버리고 오직 문학 공부에 열중했다. 이 시기에 동년배인 권필(權韠)과 선배인 윤근수(尹根壽)·이호민(李好閔) 등과 교우를 맺었다. 이들의 모임을 ‘동악시단(東岳詩壇)’이라고 한다. (중략)그는 작품 창작에 최선을 다하여 문집에 4,379수라는 방대한 양의 시를 남겼다. 두보(杜甫)의 시를 만 번이나 읽었다고 한며 시를 지을 때에 하나의 글자도 가볍게 쓰지 않았다고 전한다. 특히, 당시(唐詩)에 뛰어나 이태백(李太白)에 비유됐고 서예 또한 뛰어났다. (중략)저서로는 『동악집(東岳集)』 26권이 있다. 그의 문집에 실린 시는 자신이 옮겨 다닌 지방을 중심으로 묶여 있다. 지방의 민중생활사와 사회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담고 있다.

(사진 및 텍스트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번 학술대회는 아래와 같이 총 3개의 주제가 발표되었습니다.

제1주제. 동악 이안눌의 생애와 시세계/ 손대환 박사(청주대학교 교수)

제2주제. 시성 동악 이안눌의 문화유산 탐구/ 김추윤 박사(전 신한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제3주제. 동악 이안눌의 인생 노정과 업적/ 이인화 박사(내포민속문화연구소장)

각각의 주제발표를 경청하며 이안눌선생의 생애와 작품에 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생전에 4천수가 넘는 한시를 지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은 여러 지방의 외직을 맡으며 그곳에 관한 시를 남겼으며 더 나아가 명나라로 사행가면서도 시를 지었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러한 작품은 당시 각 지역의 민속, 풍속 등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선생이 체험한 임진왜란·병자호란과 관련한 한시는 양란이 가져다준 참상을 형상화한 내용으로 사실적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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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눌선생의 묘소와 신도비는 당진시 정미면 사관리에 있는 덕수 이씨의 선산에 있다는데요, 이 지역을 선비마을이라고 부르는 연유가 바로 선생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이안눌선생에 대한 지역적 관심과 특히 문학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안눌선생 뿐만 아니라 당진과 관계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져 그분들의 업적에 대해 재조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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