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성지의 순교자들과 주변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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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 2019-12-17 조회 : 423

"많은 성지가 있어 순례자들이 일 년 내 끊임없이 순례행진을 하는 곳"

 

당진에는 우강면에 있는 솔뫼성지를 비롯해서 신평면에 위치한 원머리성지, 합덕읍에 있는 신리성지, 합덕읍 황무실 성지, 합덕읍에 있는 합덕성당 등 많은 성지가 있어 순례자들이 일 년 내 끊임없이 순례행진을 하는 곳이다. 그만큼 이곳은 우리나라 천주교의 신앙의 못자리 역할을 했던 곳으로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곳이다. 당진은 이제 우리나라 성지순례 중심지에 서 있다.

2008년 12월 22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신리성지는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등이 체포되어 순교한 곳으로 손자선을 비롯한 천주교의 성인 5명이 관련된 유적지이다. 성지 안에는 초가집이 한 채 있었는데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손자선 성인의 생가이다.

 

신리성지는 당진시 합덕읍 너른 들에 위치해있다. 1860년대의 기록에 따르면 신리 일대는 온통 습지였다고 하는데 지금 지금은 평야의 한가운데 평화롭게 서 있는 아름다운 성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금 잘 조성된 신리성지는 정말 아름답다. 많은 사진작가들이나 애호가들이 이곳의 사진을 찍기 위하여 몰려드는 것도 이곳에 잠시 머물러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 동안 조선에서 가장 큰 천주교 교우마을이었으며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으며 한국의 천주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의 비밀교회)’라는 별칭으로도 불릴 정도로 교우들의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신리성지는 제5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마리 다블뤼(Marie Nicolas Antoine Daveluy) 주교가 1845년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하여 1866년 병인박해로 순교하기 전까지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고 한글번역 작업을 하면서 은둔하며 21년 동안 거처하던 곳이기도 하다.

다블뤼 주교는 병인박해 때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황석두 등이 체포되어 1866년 3월 23일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보령에 있는 충청수영으로 이송되어 1866년 3월 30일 수영 근처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는 군문효수형을 당했다.

예전 조선 시대에는 밀물 때 이곳을 통하여 배가 예산군 고덕까지도 배가 드나들 수 있었고 밀물을 이용하여 독일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원군 묘를 도굴하기 위해 덕산에 침입했으나 도굴에 실패하였다. 이로 인해서 그 이후에 신리를 포함한 내포 지역 교우촌 전체가 붕괴될 만큼 피해를 입었다.

다블뤼 주교는 제5대 조선교구장으로 신리공소는 실질적인 조선교구청이었다. 공소 건물은 원래 손자손의 생가로 보수공사 때 확인된 건축연대는 1815년이었는데 1964년 새롭게 복원되었고, 병인박해 때 순교한 32인의 순교자가 안장되어 있다.

성지에는 신리성지성당, 순교자기념관, 다블뤼 주교 유적지, 성인들의 경당 6곳이 조성되어 있다. 2017년 3월 25일 순교자기념관에 순교미술관이 개관하였으며 순교기록화 18점이 전시되고 있다.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이 시복되자 신리에는 순교 복자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으면서 천주교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리의 중요성도 점차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천주교 대전 교구에서는 2006년부터 신리 성지 전담 신부를 파견하여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신리성지

주소 :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 151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전화 : 041-363-1359

홈페이지 : http://www.sinr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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