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 3.10 학생독립만세운동으로 돌아보는 당진지역의 3.1운동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
 

봄을 알리는 산수유꽃이 퐁퐁 피어나고 있고 곳곳에 꽃망울이 터지고 있습니다.
매년  3ㆍ1운동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되었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고 있네요.
그냥 지나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조용히 당진지역의 3ㆍ1 운동 발자취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3ㆍ1 운동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독립선언서가 반표 되고 이어 독립만세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방으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양상의 독립만세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당진의 면천 3ㆍ10 학생독립만세운동은 충남 최초의 학생 3ㆍ1 운동으로 의미가 큽니다.

​당진 3·1운동의 계기는 고종의 인산에 참여한 학생과 유생들이 귀향하여 이루어졌습니다.
학생들이 주도한 만세 운동은 면천 공립 보통학교 만세 운동이었고, 유생들이 주도하여 전개한 것은 대호지· 천의 장터 4ㆍ4독립만세운동입니다.

 

옛 면천 공립보통학교였던 자리에는 면천 객사를 복원하기 위하여 발굴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작년에 3ㆍ10 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사업회에서 세운 원용은, 박창신, 이종원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3ㆍ1독립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귀향하여 면천공립보통학교 전교생이 독립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결의하고 계획을 세워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원용은과 함께 만세 행진 당시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뒤따르는 학생들을 이끌었던 박창신 그리고 최고 학년 급장으로 치밀하게 계획하고 학생들을 지휘통솔하여 이끌었던 이종원의 추모비입니다.
 

면천공립보통학교 자리에서 군자정 쪽으로 내려오면 3ㆍ10 학생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있습니다.
면천공립보통학교 3ㆍ10 학생독립만세운동은 학생 3ㆍ1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고 서울의 3ㆍ1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학생이 지역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추진 전개하였던 것으로  의의가 매우 큽니다.

 

정미면 천의삼거리에서  4ㆍ4 독립운동 기념탑과 남상락 자수 태극기의 석물이 펄럭이는 태극기와 함께 있습니다.
그곳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 4ㆍ4 독립만세운동 거리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삼거리 양쪽으로 태극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는 모습이 3 ㆍ 1운동 당시 현장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남상락 자수 태극기는 2008년 8월 12일 등록문화재 제38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19년 독립운동가 남상락이 당진 지역의 4ㆍ·4 독립만세운동 때 사용한 태극기로, 그의 부인 구홍원이 직접 수를 놓아 만들었다고 합니다. 직접 짠 명주에 손바느질로 제작된 희귀한 태극기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시위 때 사용된 태극기는 1986년 10월 그의 아들 남선우가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습니다.

 

대호지ㆍ천의장터 4ㆍ4 독립만세운동은 지역 유생과 대호지면사무소 직원 및 지역주민들이 연합한 만세운동입니다.
도로 수선 명목으로 대호지면과 천의장터에 이르는 구간에 주민들이 모여 천의장터까지 행진하여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당진지역 최대의 만세시위운동으로 매우 조적적이고 치밀하게 준비한 대규모 장거리 행진의 민중운동이었습니다.

 

정미면에서 대호지면사무소로 가는 길 고갯마루에 대호지 4ㆍ4 독립만세운동 거리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잠시 서서 사진도 찍고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았습니다.
천의장터를 향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걸어갔을 이 길이 지금은 4ㆍ4 만세로라도 불리고 있습니다.

 

당진시 대호지면 조금리에 위치해 있는 창의사입니다.
대호지ㆍ천의장터 4ㆍ4 독립만세운동에서 순국한 선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한 사당입니다.

 

지금의 대호지면 행정복지센터 입구 오른쪽에 3ㆍ1운동 순국선열 영세 추모비가 세워져있습니다.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 란 글귀가 대호지ㆍ천의장터  4ㆍ4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마음이 이 글귀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면천의 3ㆍ10 학생독립만세운동을 시작으로  당진지역의 3ㆍ1운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세하게 다 알 수는 없었지만 평소에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만세로의 도로가 이제는 의미 부여가 됩니다.
당진지역 항일운동의 기틀을 세운 3ㆍ10 학생독립만세운동을 생각해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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