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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최초의 학생 주도 독립만세운동, 그날의 함성을 기억하는 ‘면천 3·10 기념관’
소개
설립배경
3.10학생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0일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서울의 3.1 독립만세운동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비로 태극기를 직접 만들고 독립의 노래를 등사하고 배부하여 학우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한 사건이다.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전개한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학생 독립운동사에 선구적 의미를 가지며 당진 지역 항일역사에 도화선이 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당진시는 이러한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당시의 선열들을 기리고자 매년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나아가 지역 주민들과 인근 학생들이 이러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다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념관 공간을 기획하였다.

터졌구나 터졌구나 大韓獨立聲
十年을 참고 참아 이제 터졌네
피도 朝鮮, 뼈도 朝鮮, 이 피 이 뼈는
살아 朝鮮, 죽어 朝鮮, 朝鮮 것이다
- (이종원의 ‘원용은의 3.1독립운동거사의회고담’ 중에서) -

강선필
1898~1976

원용은
1902~1951

박창신
1900~1950

이종원
1899~1985

박성은
1899~1942
면천공립보통학교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약사(略史)




우리의 국권을 유린한 일본제국주의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가혹한 식민 통치를 자행하였다. 무단통치라고 불리는 이 시기의 통치는 지극히 엄혹했다.
온 국민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다.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1919년 3월 10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4학년이던 원용은(元容殷)은 형 원용하와 함께 서울에서 전개된 고종의 인산(장례)에 참례한 후 귀향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원용은은 동급생인 박창신, 이종원, 박성은과 뜻을 함께한 후,오후 4시경 전교생 90여명을 인솔하여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는 현수막을 들고 면천의 동문 밖에서 시내를 관통해 공립보통학교까지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훈도(교사)에 의하여 제지당했고, 일본 경찰에 억압당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식민 통치의 심장인 면천주재소를 향하여 우리의 독립을 떳떳하고 힘차게 외쳤다.
많은 학생이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취조와 고문을 받았다. 특히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원용은과 박창신은 공주형무소에 이감되었다가 4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결국 퇴학 처분을 받았다. 면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당진지역에서 최초로 전개된 만세운동일 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학생 만세운동 중 처음으로 전개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아울러 주변 지역 독립만세운동 확산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3.10학생독립만세운동 유품기증안내


본 기념관에서는 만세운동에 참여하신 애국지사의 유품을 기증받습니다.
연중 상시접수
3.10학생독립만세운동기념관
당진시청 사회복지과 (041-350-3643)
이용안내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연휴
입장료: 무료
주변정보
- 담당부서 : 관광마케팅팀
- 연락처 : 041-350-3893
- 최종수정일 : 2024-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