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三韓時代)에는 마한(馬韓)의 영역이었으며 삼국시대 백제 때에는 면천에 혜군이 있어서 당진의 넓은 범위(範圍)를 관장하였으며 당진읍을 중심으로 한 벌수지현(伐首只縣)은 당진과 고대면 쪽으로 그리고 정미면은 벌수지현이 아닌 여촌현(餘村縣)에 속했으며 신평을 중심으로 한 사평현(沙平縣)은 송악 한진 방면으로부터 넓은 해안에 산재한 영역을 관할하였다.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 때 혜군은 혜성군으로 개칭되었으며, 벌수지현은 당진현(唐津縣)으로, 사평현은 신평현으로, 여촌현은 여읍현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 초기는 지방제도가 설치되지 않고 지방호족이 다스렸으며 성종(成宗) 2년(983)에 전국을 12주로 나눌 때는 공주에 속했다. 고려 8대 현종(顯宗) 9년(1018)에는 운주(지금의 홍성)에 속한 당진현 이었으며, 고려 제16대 예종(睿宗) 원(1105)에는 감무(監務)를 두었다. 고려 말엽 공민왕 7년(1358)에는 홍주목에 속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고려 때와 같이 홍주목에 속했다가 태종(太宗) 13년(1413) 당진에 다시 현감을 두었으므로 충청도 당진현이었다. 조선시대 말엽 고종32년(1895)에는 당진군이 되어 군내, 동면, 남면, 상대, 하대, 고산, 외맹, 내맹의 8개면을 관할하다가, 1914년 군.면 폐합 때 면천군의 22개면과 해미군 일도면 대운산의 2개리와 염솔면 삼곡리의 일부와 예산군 신종면의 옥금 흑석의 2개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당진군으로 하고 이배, 고대, 석문, 마암, 송산, 순성, 범천, 합덕, 송악, 신평의 10개면 123개리로 개편 관할하는 군이 되었다. 그 후 1917년 10월에 마암면을 면천면으로, 1928년엔 이배면을 당진면으로 고치고, 1942년 10월 1일에 범천면을 우강면으로 고쳤으며, 1957년 11월 6일에 법률 제456호에 의하여 서산군 대호지면과 정미면 18개리 전체를 편입하여 12개면을 관할하는 군이 되었다.
1963년 1월 1일에 법률 제1177호에 의하여 당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으며, 1973년 7월1일에 다시 합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또한 정미면 여미리가 서산시 운산면에 편입되어 2읍 10면 149개리가 되었다.
2010년 1월 1일 송악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3읍 9면 149개리로 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가 되어 2읍 9면 3동(138개 법정리, 11개 법정동)이 되었다. 당진시는 충청남도 북부지방에 자리하여 동쪽으로는 아산시와 경기도 평택시, 서쪽으로는 서산시, 남쪽으로는 예산군과 서산시, 북쪽으로는 경기도 화성군과 접하고 있으며 대체로 산악과 구릉이 연결된 넓은 평야지대로써 농업과 철강산업이 조화롭게 발전되어 가고 있다.